가면극을 통해 구비문학의 특성에 주목할 것이다. 가면극을 이루고 있는 여러 요소들 중에서도 직접 언어로 전달되는 가면극의 대사 속에 삽입된 가요의 종류와 판소리를 살펴 볼 것이다. 삽입된 가요의 내용을 살펴보면서 이들이 가면극 대사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나아가서는 가면극 대사에
놀이판의 분위기 속에서 반복을 통하여 동일한 혹은 유사한 내용의 사설을 거듭 제시함으로써, 등장인물의 대사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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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탈놀이(탈춤, 가면극)의 유래와 분포
한국 탈놀이 <가면극>의 기원에 대해서는 농경의례설.기악설.산대회설의
놀이마다 주체성에 약간의 차이가 있어, 예컨대 남녀관계의 설정에서 봉산탈춤·오광대·꼭두각시놀음 등은 남녀의 갈등을 강조하여 영감과 미얄과 그 첩과의 삼각관계를 다룬데 비하여, 양주별산대놀이에서는 신할아비과장에서 부부관계에 첩을 등장시키지 않는 대신, 샌님과정에서 샌님·포도부장(
놀이의 이름이다. 이것은 고려 시대에 발생하여 조선 시대에 발전한 일종의 가면극으로 여러 가지 가면을 쓰고 하는 연극이다. '산대' 는 산대놀음을 하기 위하여 마련한 임시 무대이며, 한길가나 또는 빈터에 높이 대를 쌓고, 그 위에서 연극을 했다. 탈을 쓰고 소매가 긴 옷을 입은 광대가 풍악에 맞추
탈춤은 우리 나라의 민속문화 속에서 체계적으로 발전되어 온 극양식이다. 모든 문화양식이 그러하듯 탈춤 역시 그것이 만들어진 시대상황의 반영 물이다. 탈춤의 형성기를 조선 후기로 추정한다면 탈춤에는 조선 후기의 제도, 문화의 여러 모습들이 담겨있다. 조선 중기부터 시작된 신분질서의 붕괴
거기에는 호방한 남성의 움직임과 함께 오락적이고 익살적인 성향이 내포되어 있는 탈춤 무용극의 일종이었음을 알 수 있다.
▪ 등장
- 조선의 처용무는 세종조 25년 정월의 조항에 처음으로 등장한다. 세종조 25년 처용무에서는 여기(女伎)를 제외하고 남자를 기용하였다고 이르고 있다.
탈춤은 그 기원에서 볼 때 생산의 풍성함을 기원하는 원시농요제의나 부락의 안녕, 번영을 비는 부락굿 등이 목표하는 바는 제의를 통한 자연과 인간의 소통, 화해인 것이다. 그러므로 현재 전승되는 탈춤에서 공통적으로 보여지는 것은 축제적 전형성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적인 탈춤의 전승은 약화